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어디서나 혼자였다. 혼자였다. 그가 사유 끝에 내리는 결정은 항상 ‘역시 혼자’였다.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집 밖으로 나갔다. 무미건조한 회색 문을 열고 다정한 척하려 노력하는 -삐빅-띠리링- 소리들을 들으며 나왔다. 어설프고 일방적인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상 나왔다. 아무 이유 없이 공원을 걸었다. 공원을 걷기로 결심했던 걸까.
길거리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누웠다. 아이들이 뛰어 다녔다. 한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얼굴을 과도하게 구기며 웃었다. 누군가 “신앙생활 하세요?”하며 다가왔다. 눈이 맑고 오른쪽 눈 위에 하얗게 굳은 눈곱이 들러붙은 사람이었다. “선생님, 오른쪽 눈에..”하자 “왜, 뭐가 있어요?”하며 눈을 비볐다. 눈곱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던 손길 끝에, 그는 ‘왜 항상 이런 식인 걸까’하고 생각했다. 마침내 눈곱은 떨어졌고 맑은 눈이 아름다웠다. 너무 인상이 좋고 착해보여서 옆에 앉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혼자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고향은 강원도라고 말했다. 강원도 사람은 너무 착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거북함이었을까, 만족감이었을까. 그 사이 어디쯤을 오가는 기분 속에서 그는 식어갔다.
“자신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세요?”
“음.. 대답을 애매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면 ‘아니다’지만,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자신의 주인은 ‘말’이에요.”
“말이요?”
“네. 사람은 말을 통해 생각하고 행동하죠. 우리는 그 ‘말’을 연구하는 신천지에요. 신천지 들어보셨어요?”
“네. 이름은요.”
“한번 오세요.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말고, 그들의 말을 믿지 말고요. 신천지는 엄청난 비전을 갖고 있으며 곧 만국이 열광할 거에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는 이 대화 끝에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곧 ‘친구’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혼자였던 그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도 혼자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혼자였다. 그는 ‘집’이나 ‘돈’이나 ‘애인’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집 안에선 분명히 혼자였다. 집은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집을 청소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옷가지를 쳐다봤다. 옷을 모두 집어 한 데 모았다. 그렇지만 그걸 정리하지는 않았다. 아마 다른 청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옷을 뭉쳐놓았을 뿐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뭉쳐놓은 옷가지 위에 몸을 던졌다. 푹신하게 앉아 돈을 생각했다. 돈은 확실히 친구 같았다. 그가 혼자일 때에도 돈은 많든 적든 옆에 있었다. 그의 안에 돈이, 돈 안에 그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생각에 돈은 옆에 있었고 있어야 했다. 돈이 한 푼도 없을 때에는 그는 혼자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돈은 없었다. 없는 것이 친구라는 생각에 그는 울적해졌다.
그의 애인은 ‘혼자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런데 ‘혼자임’을 느끼는 두 사람은 각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 둘은 진짜로 가짜친구 같았으며, 가짜로 진짜친구 같았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도 혼자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유난히 슬퍼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리라.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면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도망쳤다. 문제를 가렸다. 거짓말로 덮었다. 문제는 비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인정받았다. 그러면서 비밀은 차가워졌고 그는 따뜻해졌다. 그래서 더부룩했다. 그는 자기 자신도 풀 수 없는 비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도 그 비밀이 뭔지 몰랐다. 그 비밀은 그냥 영원한 비밀이었다. 가끔은 그 비밀이 정말 비밀인지, 그리고 그 비밀이 정말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렇게 비밀은 비밀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비밀마저 품었다.